Κόσμος

"Goshiwons": Η ζωή στα "κελιά" διαμερίσματα της Σεούλ

Για τους ξένους και τους τουρίστες, η Νότια Κορέα είναι μια χώρα με προηγμένη τεχνολογία, εντυπωσιακούς ουρανοξύστες, πεντανόστιμο φαγητό και πολλές παραδόσεις. Αλλά τι κρύβεται στην πραγματικότητα πίσω από αυτό το πέπλο της τέλειας πόλης;

Η πρωτεύουσα της Νότιας Κορέας, η Σεούλ, είναι μια από τις πιο εντυπωσιακές στον πλανήτη - στην πραγματικότητα- είναι η χαρά της ζωής. Οτιδήποτε επιθυμεί κάποιος, από το φαγητό, την διασκέδαση και την διαμονή, μπορεί να το βρει στην πόλη «που δεν κοιμάται ποτέ»

Ωστόσο, υπάρχει μια άλλη πλευρά της χώρας, μακριά από την φαντασμαγορική ζωή, που λίγοι γνωρίζουν. Στην Σεούλ, όσοι δεν προέρχονται από πλούσιες οικογένειες ή δεν έχουν μια δουλειά που προσφέρει αρκετά καλά χρήματα, αναγκάζονται να μείνουν σε μικροσκοπικά διαμερίσματα ή όπως αλλιώς ονομάζονται «Goshiwons».

Τα «Goshiwons» είναι υπερβολικά μικρά διαμερίσματα πoυ έχουν τα απολύτως απαραίτητα: ψυγείο, θρανίο, ντουλάπα, κρεβάτι και μπάνιο, όλα σε ένα δωμάτιο.Κουζίνα δεν υπάρχει, συνήθως είναι κοινή με άλλα διαμερίσματα, εάν υπάρχει το budget. 

Παράθυρα σπανίως υπάρχουν. Πολλοί τα αποκαλούν «σύγχρονες φυλακές» με την δυνατότητα εξόδου. Την πραγματικότητα απαθανάτισε με την φωτογραφική του μηχανή ο νοτιοκορεάτης φωτογράφος, Σιμ Κιου Ντονγκ, ο οποίος πέρασε 5 χρόνια στην Σεούλ μένοντας σε ένα τέτοιο δωμάτιο.

Όμως, μια εικόνα χίλιες λέξεις. Και σε αυτήν την περίσταση, οι εικόνες μιλούν πραγματικά από μόνες του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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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film #mamiya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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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텔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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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1 요즘 가장 싼 라면이 무엇인지 알까? 고시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는 듯이 끼니때가 되면 같은 라면을 들고 부엌으로 모인다. 순한 맛은 없다. 매운맛으로 대동단결한 것은 취향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이곳이 주는 영향이라 생각해본다. 내가 끓이는 라면에 계란 하나를 넣어 주는 아저씨가 있었다. 그것에 감동해서 맑은 라면 국물을 보면, 나도 계란 하나를 건넨다. 아저씨는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거절한다. 한 번은 예의요, 두 번도 치레요, 세 번이 넘어가니까, 내가 잘못 하나 싶었다. 끝내 계란을 손에 쥐여주자, 웃으며 ‘톡’하고 깨어 넣는다. 가장 싼 라면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계란 하나의 값어치도 안다. 라면에 빠진 계란은 매운 맛을 순한 맛으로 바꾼다. 계란이 풀리고 마음도 풀린다. 라면 맛이 진하게 느껴진다. #2 “왜 안 먹어? 더 먹어!” 작가님 말에 나는 ‘체할 것 같아서요’라고 말하는 순간, 단단한 부끄러움에 체하고 말았다. 내가 아직 배가 덜 고픈지, 부끄러움을 걸려두고 사탕처럼 녹여 먹자니 이마에 땀이 흘렀다. 전시 오픈파티에는 당당히 끼니 하나를 때워야 하는 것인데, 배고픔은 체면보다 배불렀다. 사탕이 다 녹을 때 즈음, 우연히 작가님이 10년 전에 쓴 책을 읽게 되었다. 내용은 이랬다. “서른 살에 집을 나와 혼자 살면서 나는 굶어 죽을지 모른다는 강박증에 시달렸다. 생활비를 쪼개 쓰는 입장도 그렇고, 혼자 살면 제때 밥을 챙겨 먹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술자리와 식사기회가 있으면 정말 잘 먹는다. 생활이 바뀌어도 가난하긴 지금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일을 안 하면 삶도 작품도 죽는다는 생각을 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 가난을 재산으로 삼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또 체하고 말았다. 부끄러움 사탕의 맛이 진하게 느껴진다. #3 어버이날, 밤늦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이 전화는 받았다. 평소처럼, 무슨 일을 하느냐고, 그만 내려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밥은 잘 챙겨 먹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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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은 곧 순수함을 잃고, 어느 때에 이르면 꼭 명예를 탐하게 된다. (이렇게 작가가 되고 싶은 작자가 나다) 하지만 재능 없는 명예욕은 패배만 남길 뿐이다. 이 패배감은 산소의 빛마저 흡수해버린 어둠 속에 나를 가둔다. 그 어둠에 처음 들어 앉은 때는 4년 전이다. 여행잡지사에서 일했지만, 버티지 못하고 몇 달 만에 그만두었다. 써지지 않는 글을 지어내, 마감일에 맞추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결정적으로 편집장과 선배보다 한참 못 미치는 소양에 이미 어둠의 앞날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학창시절부터 책에 빠져 산 사람들이야. 칼을 갈고 다시 도전해 보던가." 잡지사 대표님은 떠나는 내게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그리고 2년 동안 꾸준히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쓰고 싶은 글을 썼다. 열등감은 무딘 칼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시간은 무딘 칼을 기억에서 지웠다. 그제야 비로소 출판 제의에 응했다. 또다시 어둠에 갇힐 줄 모른 채, 명예욕으로 날뛰었다. 강릉을 배경으로 한 포토에세이를 원했고, 심혈을 기울여 메일을 보냈다. 돌아온 답변은 (여전히) 글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책을 더 읽고, 문장력을 키우라는 조언도 덧붙여서... '내 주제에 무슨 책을 내겠다고!' 희망과 절망은 물과 얼음과 같다. 온도의 차이일 뿐 본질은 같다. 큰 물은 큰 얼음이 되었다. 그리고 어둠은 여전했다. 이번이 마지막일까? 다시 2년 만에 작가가 되고 싶어졌다. "시를 쓸 감성이 있어!" 시인이 말했다. 무려 나에게. 어둠은 까맣게 잊히고, 나는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나에게 어떤 재능을 본 것이 틀림없다. '잡지사 대표님도, 출판사 사장님도, 시 쓰는 작가님도 나도 모르는 내 능력을 보았던 게지. 그 결과가 좋지는 않았지만, 결과가 있다는 것은 시작이 있다는 것이고, 시작이 있다는 것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겠지.' 마침 읽고 있던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앙리가 화가가 되기를 원한다면 화가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제아무리 재주가 타고났어도 저절로 예술가가 될 수는 없다. (중략) 따라서 그림을 배우려면 일단 배우고 나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라도 그림의 내적 매커니즘을 꿰고 있을 필요가 있다." 나는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학당을 신청했다. 내가 쓴 시가 왜 시가 아니고 시를 쓸 수 있는 감성뿐인지, 그러니까 시가 무엇인지, 그래서 내 시를 시로 만들 수 있을지, 궁금했다. 시학당에서 여전히 나는 거의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들은 학창시절부터 책에 빠져 산 사람들이야! (너와는 다른 사람이야, 너는 안돼, 너는 안돼! 너는!)" 어둠에서 들었던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그곳에 있는 것처럼. 내가 쓴 시는 어디서 본 뻔한 표현이거나, 차라리 누구의 시를 읽는 편이 낫거나 한 것이었다. 난 그것이 왜 중요한지 몰랐다. 책을 많이 읽으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라고 눈을 감아버리면 안 된다. 눈을 뜨고 보려고 하면 언젠가 보인다. 그 언젠가 빛이 드리울 때 빛나도록 눈을 더 크게 떠야 한다. 그래서 희망이 있는 사람의 눈은 언제나 반짝인다. 책을 많이 읽으라는 말을 조금 알 것 같다. 선사시대 동굴의 벽화가 예술일 수 있지만, 이 시대 꼬마의 스케치북 그림이 예술일 수 없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 오랜 세월을 공부해야겠다. 책을 보고 시를 읽고, 참 할 것이 많다. 한참 못 미치는 것을 스스로 알자, 조급한 마음이 사라졌다. 어둠 속에서 아주 희미한 빛을 봤고, 그 길이 아주 멀지만 빠져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 한 발 움직였을까. "글을 쓸 사람은 글을 쓸 환경이 주어진다." 나는 이 말을 참 좋아한다. 내가 좌절했을 때 나는 작가가 될 사람이 아니라고 체념하게 도와줬고, 반대로 글을 쓸 환경이 주어졌을 때 혹시 작가가 될 운명일까 희망을 주었다. 이 말이 있어서 내딛는 한 발이 덜 두렵다. 어둠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빠진 것이면 좋겠고, 희망은 본 것이 아니라 마음먹기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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